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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5일, 세부 마리곤돈

by dkdiver 2026. 5. 2.

마지막 날, 마리곤돈을 택하다


세부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짐은 이미 반쯤 싸여 있었고, 오후에는 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입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박병준과 강병철, 둘 다 같은 마음이었다.
마지막 다이브 포인트로 마리곤돈을 택했다.
마리곤돈은 막탄 섬 남쪽에 위치한 다이빙 포인트로, 세부를 대표하는 월 다이빙 사이트 중 하나다.
수심 20미터 언저리에 입이 열리는 동굴과 함께 깎아지른 절벽 같은 리프 월이 인상적인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숨길 수 없는 단점이 하나 있다.
조류가 심하다는 것이다.
마리곤돈은 조류의 방향과 세기가 예측하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어떤 날은 잔잔하고, 어떤 날은 다이버를 옆으로 쓸어버릴 만큼 강한 사이드 커런트가 몰아친다.
입수 전 가이드가 오늘 조류 상태를 확인하며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마지막 다이브니까, 가보자는 결론이 났다.
세부의 마지막 공기를 탱크에 가득 채우고,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마리곤돈의 조류 — 바다는 오늘도 만만하지 않았다


입수하는 순간부터 조류의 존재가 느껴졌다.
수면에서는 잔잔해 보였지만 수심이 깊어질수록 조류의 압력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리프 월을 따라 하강하면서 몸이 조금씩 옆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핀킥으로 버티면서 월을 따라가려 했지만, 조류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려 잠시 멈추는 사이에도 몸이 흘러가 버렸다.
벽을 따라 흘러가는 시야 속에서 리프의 산호들이 빠르게 지나쳐 갔다.
평소라면 천천히 들여다봤을 산호 구석구석을 오늘은 그냥 흘려보내야 했다.
조류 속에서 찍힌 사진들을 보면 그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몸이 살짝 기울어진 채로 리프 월 옆에 떠 있는 자세, 노란 핀이 조류에 맞서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 시야가 약간 뿌옇게 흐려진 수중 풍경이 그날의 바다를 그대로 보여준다.
마리곤돈의 조류는 다이버를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바다 앞에서는 항상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는 것, 오늘 이 조류가 다시 한번 몸으로 가르쳐 주었다.
버디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끊임없이 위치를 확인하고, 조류에 밀리면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쉽지 않은 다이브였지만, 그렇기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다이브이기도 했다.
바다가 항상 다이버에게 유리한 조건만 내어주지는 않는다.
그 불편함과 두려움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다이빙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다.


마지막 버블을 남기며 — 세부와의 작별


안전 정지를 마치고 수면으로 올라오던 그 순간이 유독 천천히 느껴졌다.
올라가기 싫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 세부에서의 모든 다이브가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세부 바다에 들어왔던 그 날부터, 4명이 함께 웃으며 헤엄치던 어제의 다이브, 그리고 오늘 마리곤돈의 거친 조류까지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마스크를 올리며 박병준과 눈을 마주쳤다.
둘 다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이번 여행의 모든 감정을 대신해 주었다.
장비를 챙기고 보트에 오르는 동안에도 자꾸만 바다 쪽으로 눈이 갔다.
마지막 입수가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이빙은 언제나 마지막 버블이 수면 위로 사라지는 순간 아쉬움을 남긴다.
그 아쉬움이 다음 다이빙을 기약하는 이유가 된다.
마리곤돈의 조류가 오늘은 유독 몸을 힘들게 했지만, 그 거친 바다가 이번 세부 여행의 마무리로 딱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까지 쉽게 내어주지 않는 바다,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바다였다.
세부, 다음에 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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