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세부 바다로
2020년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이후, 무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필리핀 세부행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국경은 닫혔고, 다이빙 숍은 문을 걸어 잠갔으며, 그토록 그리던 세부의 푸른 바다는 기억 속에서만 출렁이고 있었다.
그 긴 공백을 깨고 마침내 2022년 6월 5일, 다시 세부 땅을 밟고 다이빙 장비를 몸에 두르게 됐다.
입수 포인트에 도착했을 때의 날씨는 구름이 잔뜩 낀 흐린 하늘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흐리든 맑든,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웻수트를 입고 BCD에 탱크를 연결하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랜만이라 장비 세팅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고,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돌로 쌓인 방파제 옆 얕은 바닷가에서 장비를 최종 점검하고, 동료 다이버와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장비를 확인했다. 수면 위로 반쯤 잠긴 채로 카메라를 들여다보던 그 순간, 괜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왔구나.' 2년이 넘는 기다림이 이 한 순간에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물속에 몸을 담그자마자 세부의 바다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나를 끌어안아 주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부력의 감각, 귀로 들어오는 자신의 호흡 소리, 눈앞에 펼쳐지는 파란 세계.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너무나 익숙했다. 코로나가 빼앗아 갔던 2년의 시간을 바다가 단번에 돌려주는 것만 같았다.
수중 세계
입수 직후 하강을 시작하자 눈앞에 펼쳐진 세부의 수중 세계는 코로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세상이 멈춰있는 동안에도 바다는 계속 살아 숨쉬고 있었다는 것이 새삼 가슴 깊이 다가왔다.
시야는 꽤 양호했다. 투명한 파란 물속으로 빛이 내리꽂히고, 그 빛줄기 사이로 기포들이 은방울처럼 반짝이며 수면을 향해 올라갔다.
얕은 수심에서는 모래 바닥 위로 크고 작은 산호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클라운피시, 일명 '니모'였다. 말미잘 사이에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유영하는 클라운피시를 가까이에서 목격했을 때 저절로 손가락이 모여 OK 사인을 만들었다. 이 작은 녀석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포인트를 이동하며 월(Wall) 지형도 탐험했다. 깎아지른 듯한 수직 암벽이 아래로 아득하게 이어지고, 그 벽면을 따라 부채꼴 산호와
소프트 코랄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벽 끝에 손을 뻗어 산호를 가리키며 동료에게 신호를 보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빛은 줄어들고 파란색은 점점 짙어졌다.
광활한 오픈 워터를 배경으로 혼자 유영하는 그 고독하고도 자유로운 자태야말로 스쿠버 다이빙의 진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몸 하나만 달랑 물속에 띄워놓고 중성부력으로 공중에 떠 있는 그 감각을,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지만 몸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랜만인데도 몸이 먼저 바다를 기억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이빙을 마치며
수면으로 올라와 레귤레이터를 입에서 빼내는 순간,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얼굴로 훅 밀려왔다.
헬멧을 벗고 마스크를 이마 위로 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구름이 두텁게 낀 하늘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하고 상쾌하게 느껴졌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숙제를 하나 마친 것 같은 홀가분함이었다.
팀원들과 함께 입수 포인트 근처의 돌계단을 밟고 물 밖으로 나왔다.
탱크를 내려놓고 웻수트 지퍼를 내리는 소소한 순간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동료와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오늘 찍힌 사진들을 확인하고 서로 웃었다.
사진 속 우리는 모두 파란 물속에서 행복해 보였다.
코로나 이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누렸던 이 순간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감사하게 다가왔다.
세부 다이빙은 항상 그랬듯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수중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몸짓 하나, 눈짓 하나로 모든 것을 소통하고, 자연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그 경험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팬데믹을 거치며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체감하는 요즘이지만, 세부의 바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2년 동안 산호는 조금 더 자라고, 물고기들은 조금 더 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