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다이빙 포인트
2023년 3월 23일.
강병철과의 다이빙이 다시 시작됐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방카 보트 아웃리거에 손을 걸고
수면을 바라보는 강병철의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며칠 전과는 다른 얼굴이었다.
처음 보트에 올랐던 날의 긴장감은 이제 없었다.
바다가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공간으로 바뀐 사람의 얼굴이었다.
오늘 포인트는 두 가지 지형이 연결된 구조였다.
입수 후 하강하면 대형 암반들이 서로 맞닿아
좁은 협곡과 수중 캐니언을 이루는 구간이 나타난다.
그 사이를 통과해 나오면 리프 월과 모래 바닥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열린 구조로 전환된다.
시야는 탁월했다.
블루워터가 뒤로 길게 열려 있었고
산호 위의 색들이 선명하게 살아 있었다.
오늘 다이빙에는 수중 카메라를 든 다이버도 함께였다.
대형 하우징을 장착한 카메라로
협곡 안에서 앵글을 잡고 있는 그 모습이
이미 포인트의 기대감을 높여줬다.
좋은 것이 있는 곳에는 카메라가 먼저 가 있다.
2. 다이빙 포인트 설명
오늘 다이빙의 시작은 협곡이었다.
거대한 암반 두 개가 맞붙어 만들어진 좁은 틈 사이로
진입하는 순간, 주변의 블루워터가 일순 차단되며
수중이 다른 공간으로 바뀌었다.
천장처럼 얹힌 암반 위로 빛이 기울어져 들어오고
양쪽 암벽 사이로 두 다이버가 나란히 통과했다.
협곡 안에서는 소리도 달라진다.
거품 소리가 좁은 공간 안에서 더 또렷하게 들렸다.
강병철이 앞서 통과하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봤다.
좁은 수중 통로를 패닉 없이 차분하게 빠져나가는 그 뒷모습이
며칠 전과 비교해 한결 안정적이었다.
협곡을 빠져나오자 리프 월 구간이 이어졌다.
벽면을 따라 이동하던 중 한 다이버가 붉은 SMB를 손에 쥐고
안전정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이빙이 마무리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였지만
그 전에 오늘의 주인공을 만났다.
산호가 무성한 테이블 코랄 군락 사이에서
한 마리가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레오파드 그루퍼(Leopard Grouper, Plectropomus leopardus)였다.
흰 바탕 위에 선명한 파란 테두리의 검은 점들이
몸 전체를 가득 덮고 있었다.
그 무늬가 마치 누군가가 정교하게 찍어낸 것처럼
규칙적이면서도 생동감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테이블 산호 아래에서 천천히 지느러미만 움직이며
우리를 바라봤다.
주변에는 배트피쉬(Batfish)도 보였다.
납작한 몸체에 길고 삼각형의 지느러미를 늘어뜨린 채
리프 바닥 가까이를 느긋하게 이동하는 배트피쉬 한 마리가
레오파드 그루퍼 옆을 지나쳐 갔다.
리프를 벗어나 모래 바닥 위로 이동하는 구간에서
강병철이 노란 핀을 가볍게 저으며 중성부력을 유지했다.
흰 모래 위에 떠 있는 그 실루엣이
블루워터 배경과 어우러져 조용하고 자연스러웠다.
장비가 아니라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 다이버의 모습이었다.
3. 느낀점
오늘 다이빙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레오파드 그루퍼와 마주친 순간이다.
그 물고기는 도망가지 않았다.
테이블 산호 아래에서 두 다이버가 다가와도
천천히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그 자리를 지켰다.
검은 점들이 빼곡하게 박힌 몸으로
조용히 정면을 바라보는 그 자세가
당당하다는 표현 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리프를 오래 다니다 보면
자리를 지키는 물고기와 도망치는 물고기를 구분하게 된다.
레오파드 그루퍼는 언제나 전자 쪽이다.
자신의 구역에서 흔들리지 않고
손님처럼 찾아온 다이버들을 조용히 응시한다.
그 시선을 받아내는 것도 다이빙의 일부다.
협곡을 통과하는 강병철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좁은 수중 통로는 처음 들어가는 사람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는 구간이다.
오늘은 그 압박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통과하는 속도도, 호흡의 리듬도
바깥에서 이동할 때와 다르지 않았다.
수중에서 마음이 안정된다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다.
강병철이 그 경험을 쌓고 있다.
모래 바닥 위에서 중성부력을 유지하며
노란 핀을 천천히 저으며 이동하는 그 모습이
이 다이빙의 끝에 남아 있는 이미지다.
아무것도 잡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지 않고
그냥 물속에 떠 있는 사람.
그 상태가 되기까지가 다이빙에서 가장 긴 시간이다.
오늘 강병철은 그 자리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