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다이빙 포인트
2024년 6월 9일.
강병철과 함께한 날이었다.
이틀 전의 다이빙들이 리프 월과 드롭오프 위주였다면
오늘은 처음부터 방향이 달랐다.
모래 바닥과 해초밭 구간에서 시작해
암초와 봄미를 거쳐 드롭오프 경계까지 이어지는 루트.
지형의 변화가 많고 생물의 밀도도 높은 구역이었다.
얕은 구간에서 입수했다.
수중은 약간의 입자가 섞인 청록빛이었다.
완벽하게 맑은 시야는 아니었지만
그 탁함이 오히려 이 구역이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
플랑크톤과 유기물이 떠다닌다는 것은
먹이 사슬이 촘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맑은 물이 항상 건강한 바다를 뜻하지는 않는다.
오늘 강병철은 수중 카메라를 직접 들고 들어왔다.
무언가를 직접 찍고 싶다고 했었는데
오늘 그가 원하던 것 이상의 장면을 만나게 될 줄은
입수 전에는 나도 몰랐다.
바다는 언제나 계획보다 많은 것을 준다.
2. 다이빙 포인트 설명
입수 직후 나타난 것은 해초밭이었다.
납작하고 길쭉한 해초(Seagrass)들이
흰 모래 위로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수중 전체가 청록빛으로 가라앉은 채
해초의 초록빛이 바닥에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이 구간은 산란지이자 어린 물고기들의 은신처다.
지나가다 보면 해초 줄기 사이로 작은 생물들이
가만히 숨어 있는 것이 보인다.
리프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암반이 나타났다.
바위 표면에 붉은빛 피복성 스펀지(Encrusting Sponge)가
면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그 위에 크리노이드(Crinoid, 깃별벌레)가
검고 구불구불한 팔을 뻗은 채 자리를 잡고 있었다.
크리노이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서 조류에 팔을 맡기며 먹이를 걸러낸다.
그 형태가 꽃처럼, 때로는 오래된 공예품처럼 보인다.
오늘의 가장 큰 장면은 모래 바닥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암초와 암초 사이의 모래 구간으로 들어선 순간
눈앞에 거대한 덩어리가 있었다.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하나의 공처럼 뭉쳐
바닥 가까이 낮게 떠 있었다.
줄무늬 뱀장어 메기, 플로토수스 리네아투스(Plotosus lineatus).
독가시를 가진 이 물고기들이
밀집된 구 형태로 뭉쳐 이동하는 것은 알려진 행동이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수백 마리가 한 덩어리를 이루는 것을 보는 것은
언제 봐도 압도적이다.
빽빽하게 몸을 맞대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군집이
하나의 거대한 단일 생물처럼 보였다.
강병철이 바로 카메라를 들었다.
그 모습이 고프로 화면에도 담겼다.
파란 반다나를 머리에 두르고 수중 카메라를 정면으로 겨누며
커다란 메기 공 바로 앞에서 조용히 셔터를 누르는 그 모습.
조급함 없이, 겁 없이.
다이빙을 함께 하다 보면 사람의 성격이 수중에서 드러난다.
강병철은 오늘 그 군집 앞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배경에 거북이 있었다.
바위 사이 안쪽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바다거북의 실루엣이 메기 군집 너머로 보였다.
메기 무리를 촬영하는 강병철의 배경에
거북이 지나가는 그 장면은
계획할 수 없는 구도였다.
리프를 따라 이동하면서 드롭오프 경계에 이르렀다.
암초가 끝나고 바닥이 어두운 블루워터로 사라지는
그 경계선이 나타났다.
한쪽은 돌과 산호와 모래,
다른 한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파란 어둠이 있었다.
그 선 위에 잠깐 멈췄다.
다이빙 후반, 큰 암초 구조물로 이동했다.
오버행 아래와 크레비스 주변으로
노란 줄무늬의 옐로우스트라이프 스내퍼(Yellowstripe Snapper, Lutjanus kasmira)들이
수십 마리씩 모여 있었다.
암초 위쪽으로는 검은 크로미스 떼가,
그 아래 틈새에는 노란 스내퍼 무리가
층을 이루며 같은 암초를 함께 쓰고 있었다.
암초 하나가 하나의 건물처럼,
각 층마다 다른 생물이 살고 있는 구조였다.
3. 느낀점
플로토수스 군집 앞에서의 강병철을 오래 생각한다.
수백 마리의 메기가 바닥 위에서 공처럼 뭉쳐 있는 그 앞에서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카메라를 내리지도, 거리를 두지도 않았다.
그냥 그 앞에 서서 셔터를 눌렀다.
다이빙을 배우는 사람들을 옆에서 보다 보면
수중에서 처음 보는 생물 앞에서의 반응이 각자 다르다.
뒤로 빠지는 사람, 소리를 지르려다 마우스피스를 꽉 무는 사람,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 들어가는 사람.
강병철은 세 번째 쪽이었다.
그게 가끔은 주의가 필요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성격이 가장 좋은 장면을 만들었다.
거북은 보너스였다.
군집 뒤에 조용히 있던 거북을 강병철은 나중에야 알아챘다.
사진을 확인하다가 배경에 거북이 담긴 것을 발견했을 때
그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수중에서는 보이는 것에 집중하느라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오늘 그 사진 한 장 안에는
강병철이 보려 했던 것과
그가 보지 못했던 것이 함께 있었다.
드롭오프 경계에서 잠시 멈췄을 때의 그 감각도 남는다.
리프 끝에서 바닥이 없어지는 그 지점.
언제 서도 같은 감각이 온다.
한쪽은 아는 세계이고 다른 쪽은 모르는 세계인 그 경계.
다이빙을 오래 해도 그 순간만큼은
항상 처음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강병철의 다이빙이기도 했고
내가 함께 본 다이빙이기도 했다.
같은 물속에 있었지만
그가 본 것과 내가 본 것이 조금 달랐을 것이다.
다이빙이 항상 그렇다.
같은 자리에서도 각자 다른 것을 본다.
그리고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놓친 것을 그가 봤고
그가 놓친 것을 내가 봤다.
그렇게 합쳐지는 것이 함께 다이빙하는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