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다이빙 포인트
다이버들 사이에서 누디브랜치(Nudibranch)는 독특한 위상을 가진다.
크기는 손톱만 하거나 그보다 작다.
빠르게 이동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눈에 잘 띄지 않는 생물이다.
그런데 이것에 빠진 다이버들은
일부러 이것만 찾아 다이빙을 한다.
카메라를 달고 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찾는다.
그 이유가 뭔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직접 가까이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이렇게 작은 것이 이렇게 화려할 수 있다는 것을.
세부 바다에는 수십 종의 누디브랜치가 산다.
같은 포인트에서도 어떤 날은 하나도 못 보고
어떤 날은 여러 마리를 연속으로 발견한다.
찾으면 보이고 안 찾으면 지나치는 생물이다.
2. 누디브랜치는 어떤 생물인가
누디브랜치는 연체동물이다.
이름의 뜻은 '벌거벗은 아가미'.
외부로 드러난 아가미가 등 위에 나뭇가지처럼 돋아나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그 돌기들을 세라타(Cerata)라고 한다.
이것이 누디브랜치를 화려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색이 다양하다.
빨강, 파랑, 주황, 노랑, 보라, 흰색에 점박이 무늬까지.
같은 종인데 개체마다 색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천 종이 넘는 다양한 종이 전 세계 바다에 분포하며
세부에서는 수십 종이 확인된다.
왜 이렇게 화려할까.
천적에게 자신이 독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색이다.
누디브랜치 중에는 먹이로 삼는 산호나 해면의 독소를 몸에 축적하는 종이 있다.
그 독성을 색으로 광고하는 것이다.
주로 야간에 활동하는 종이 많지만
낮에도 찾을 수 있다.
산호 사이, 바위 밑, 모래 위, 해면 위.
먹이가 있는 곳 근처에 있다.
마크로 렌즈가 있는 카메라로 찍으면
눈으로 볼 때보다 훨씬 선명하고 화려한 사진이 나온다.
누디브랜치 사진 하나로 수중 사진을 시작하게 된 다이버가
내 주변에 여러 명 있다.
3. 처음 누디브랜치를 찾았을 때
처음 누디브랜치를 발견한 것은 세부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경력 있는 다이버가 손으로 가리켜서 봤다.
모래 위에 있었는데 크기는 2센티미터가 채 안 됐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등 위로 주황색과 흰색의 돌기들이 뻗어 있었다.
그게 처음 누디브랜치를 제대로 본 순간이었다.
작은 것이 이렇게 정교할 수 있나 싶었다.
이후로 다이빙할 때 바닥을 천천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
큰 것만 보던 시야가 작은 것도 보기 시작했다.
누디브랜치는 눈에 익으면 점점 더 잘 보인다.
처음에는 지나쳤던 것들이
어느 시점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게 수중을 보는 능력이 늘어난 증거라고 생각한다.
세부에서 다이빙을 한다면 바닥을 천천히 보길 권한다.
거북이나 상어처럼 크고 빠른 것들만 있는 게 바다가 아니다.
작고 느린 것들이 그 안에 훨씬 더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