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다이빙 포인트
처음 세부에 왔을 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며칠 다이빙하고 떠나는 일정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처음 바다를 봤을 때
바다가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한국에서 바다를 보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
여기서는 그냥 있으면 바다였다.
처음 들어간 포인트는 세부 근해의 리프였다.
얕고 맑고 물고기가 많은 곳.
입수하는 순간부터 달랐다.
수온이 따뜻했다.
수트를 입었는데도 그 온기가 느껴졌다.
수중에 들어가 처음 주변을 둘러봤을 때
색이 달랐다.
한국 바다에서 보던 색과 다른 파란색이었다.
더 진하고, 더 투명한 파란색.
그 파란색 안에서 며칠을 보냈다.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2. 결정의 순간
마지막 다이빙을 마치고 보트 위에서 장비를 벗으며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 아래 리프가 보였다.
방금 유영하고 나온 그 리프.
산호들, 물고기들, 아까 만났던 거북이 아직 거기 있을 것이다.
내가 나온다고 해서 그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비행기를 타면 그게 끝이었다.
내일부터는 이 바다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든 생각이 있었다.
여기서 살면 어떨까.
황당한 생각이었다.
현실적으로 검토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떠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부터 사라지지 않았다.
공항 가는 차 안에서도 그 생각이 있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면서도 있었다.
귀국하고 나서도 그 생각은 며칠 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결국 다시 왔다.
이번에는 일정이 없이.
그리고 지금 여기 있다.
3. 느낀점
세부에 남기로 한 결정이 대단한 결심이었냐고 물으면
솔직히 그렇지 않았다.
천천히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고, 현실적으로 따져본 다음에
합리적으로 내린 결론이 아니었다.
보트 위에서 수면을 바라보다가
그냥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 전부였다.
그 단순한 감각 하나가
지금의 이 삶을 만들었다.
세부에서 강사로 사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국에 있는 것들이 그리울 때도 있고
이 선택이 맞는 건지 모르겠을 때도 있다.
그런데 매일 아침 바다를 보면서 출근하는 이 일상이
다른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이 맑은 날은 수면 너머로 리프가 보인다.
그 리프 위로 오늘은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그걸 매일 직접 확인하러 들어간다.
그것이 세부에 남은 이유다.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