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다이빙 포인트
보트에 오르자마자 하늘이 달랐다.
며칠 동안 맑고 청명했던 하늘이
오늘은 두꺼운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지만 수면의 색이 어두웠다.
회색빛 하늘이 수면에 그대로 내려앉아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서부터가 바다인지
경계가 흐릿한 날이었다.
"오늘 날씨가 좀 그러네요."
동행 다이버가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수중에 들어가기 전에 그 말을 들으면
나는 항상 속으로 생각한다.
들어가봐야 안다고.
이런 날 다이빙을 해본 사람은 안다.
물속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위에서 내려오는 빛의 양이 줄어들면
수중은 더 조용해진다.
색이 가라앉고, 윤곽이 부드러워지고,
모든 것이 한 단계 더 깊어진 것처럼 보인다.
나는 흐린 날 다이빙을 좋아한다.
이유가 있다.
2. 빛이 줄어들 때 수중에서 생기는 일
맑은 날 수중에는 빛이 쏟아진다.
수면을 통과한 햇빛이 리프 위로 내려오면서
산호의 색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물결 모양의 빛 무늬가 모래 바닥 위로 흘러다닌다.
화려하고, 밝고, 시각적으로 풍요롭다.
사진이 잘 나오는 조건이다.
흐린 날은 그게 없다.
수중은 균일하게 어두운 채로 시작된다.
그런데 그 어둠이 나쁜 것이 아니다.
햇빛이 없는 수중은 그 자체의 색을 드러낸다.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파란색.
맑은 날의 밝고 다채로운 색이 아니라
더 깊고 균일한 그 파란색이
흐린 날 수중의 가장 큰 특징이다.
빛이 줄어들면 색의 대비가 오히려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흐린 날의 파란 수중에서
노란 크로미스 떼가 지나갔다.
그 노란빛이 유독 잘 보였다.
배경이 균일하게 어두울수록
그 안에 있는 색이 더 잘 튀어오른다.
물고기들의 움직임도 달라지는 것 같다.
빛이 강한 날에는 물고기들이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편이다.
흐린 날에는 한 박자 느리게, 한 동작씩.
리프 전체가 숨을 고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이버도 덩달아 느려진다.
서두르지 않고, 빛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지금 이 어두운 수중 안에서 보이는 것들을 본다.
3. 느낀점
흐린 날 다이빙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
대부분은 맑은 날을 원한다.
햇빛이 쏟아지는 블루워터, 선명한 산호 색깔,
사진이 잘 나오는 조건.
그 마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맑은 날의 다이빙이 아름답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흐린 날 수중에만 있는 것이 있다.
조용함.
빛이 줄어들면 수중이 조용해진다.
그 조용함이 다이버에게 전달된다.
평소보다 느리게 이동하고,
평소보다 오래 한 자리에 머물게 된다.
작은 것이 더 잘 보인다.
지나쳤을 것들을 멈춰서 보게 된다.
맑은 날의 다이빙이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흐린 날의 다이빙이 보여주는 것이 따로 있다.
같은 포인트인데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다이빙의 이상한 매력 중 하나다.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지 않고 그냥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의 바다를 봤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흐린 날 다이빙을 피하지 마세요.
들어가봐야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