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다이빙 포인트
다이빙 강사 생활을 하다 보면
설명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입수 전 브리핑, 수중에서의 핸드 시그널,
출수 후 디브리핑.
무엇을 봤는지, 왜 그게 중요한지,
어떤 생물이고 어떤 생태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이 일이고, 설명이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변화가 생겼다.
혼자 들어가거나 말이 필요 없는 상대와 함께 들어갈 때
수중에서 아무것도 설명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온다.
그냥 보고 싶다.
이름을 떠올리지 않고, 생태를 설명하지 않고,
그냥 거기 있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이상한 일인지 한참 생각했다.
강사가 설명을 멈춘다는 것이
무언가를 잃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반대였다.
설명을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2. 설명하지 않을 때 보이는 것
다이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수중에서 보이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려 했다.
저건 나비고기, 저건 자리돔, 저건 쏠배감펭.
생물의 이름을 아는 것이 곧 그것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부하고, 외우고, 인식하는 것.
그것이 수중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강사가 되면서 그 방향이 강해졌다.
이름을 알아야 설명할 수 있으니까.
생태를 알아야 가르칠 수 있으니까.
수중에서 무언가를 보면 즉각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리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런데 이름을 아는 것이
그것을 보는 것과 항상 같은 것은 아니었다.
테이블 산호 앞에 멈춰 섰을 때가 기억난다.
핑크 앤시아스 수백 마리가 산호 주변을 가득 채운 그 장면.
그 앞에서 핀킥을 멈추고 그냥 서 있었다.
앤시아스라는 이름도, 그것의 생태도
그 순간에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 색과 움직임 앞에 있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설명을 멈추면 다른 감각이 열린다.
빛의 방향이 보이고, 물의 흐름이 느껴지고,
물고기들의 움직임 리듬이 들어온다.
이름을 떠올리는 것에 쓰던 뇌의 일부가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
3. 느낀점
다이빙을 오래 하면 설명하고 싶은 마음보다
그냥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이것이 퇴보인지 성숙인지
처음에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강사로서 설명을 멈추는 것이
전문성을 잃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설명할 수 있는 것과 그냥 볼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이다.
둘 다 필요하다.
가르치는 순간에는 설명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혼자 혹은 조용히 다이빙하는 순간에는
그냥 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수중에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그냥 거기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시간.
그 시간이 쌓이면서
다음번 설명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직접 경험한 감각이 설명 안에 들어가는 것.
이름과 생태 너머의 무언가가 생기는 것.
오늘도 혼자서, 혹은 조용히 둘이서
이 바다를 봤다.
다이빙을 오래 하면 설명하고 싶은 마음보다
그냥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