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다이빙 포인트
29미터까지 내려가기로 한 날이었다.
리프 탑에서 출발해 경사면을 따라 천천히 하강했다.
수온 27.6도, 청록빛 수중이 아래로 열려 있었다.
튜브 스펀지들이 암반 위로 굵은 대롱처럼 솟아 있었고
그 사이로 엽상 산호가 층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경사면을 따라 내려갈수록 빛이 줄어들었다.
얕은 구간에서는 수면의 빛이 리프 위로 쏟아지지만
수심이 깊어질수록 그 빛이 옅어지고
수중은 점점 균일한 파란 어둠으로 바뀐다.
목표 수심에 도달했을 때
리프 벽 아래에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동굴이라고 해서 깊고 긴 동굴이 아니다.
리프 벽 아랫부분이 오버행을 이루며 형성된
어둠이 고여 있는 구간.
자연광이 닿지 않는 곳.
그 안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2. 불빛이 닿은 순간
손전등을 켜고 안쪽을 향했다.
불빛이 닿자마자 어둠 속에서 색이 터져 나왔다.
진한 주홍빛과 오렌지빛의 스펀지들이
동굴 내벽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 위로 흰 튜브 스펀지들이 불꽃처럼 솟아 있었다.
바깥의 청록빛 수중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같은 물속인데 손전등 하나가 바뀌자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수중에서 붉은색 계열의 색은 빨리 사라진다.
빛의 파장 중 붉은 계열이 가장 먼저 흡수되기 때문에
수심이 깊어질수록 빨간색과 주황색은
수중에서 녹아 사라진다.
카메라로 찍어도, 눈으로 봐도
자연광 아래에서는 그 색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손전등의 백색광이 닿는 순간
그 흡수된 파장이 되돌아온다.
어둠 속에 있던 색들이 한꺼번에 살아난다.
동굴 내벽 가득 붙어 있는 스펀지들이
자연광이 없는 이 구간을 선택한 것은 이유가 있다.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빛이 없으면 광합성을 하는 생물들이 살 수 없다.
그 자리를 스펀지가 채운다.
손전등 없이는 보이지 않는 풍요가
이 어두운 구간에 가득 자리 잡고 있었다.
동굴 벽을 따라 작은 실버사이드 물고기들이
반짝이며 움직였다.
불빛에 반응해 방향을 바꾸는 그 움직임이
어둠 속의 별처럼 보였다.
3. 느낀점
오늘 다이빙에서 가장 강하게 남는 것은
손전등을 켰을 때의 그 순간이다.
어둠 속에서 불빛 하나가 닿자
주홍빛과 오렌지빛 스펀지들이 한꺼번에 살아났다.
동굴 바깥의 수중은 청록빛이었는데
그 안은 완전히 다른 색의 세계였다.
자연광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생물들은
색을 잃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불빛이 있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세상에는 꽤 많다.
그것이 오늘의 가장 단순하고 강한 감각이었다.
다이빙을 오래 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감각이다.
맑은 날 햇빛이 쏟아지는 리프 위의 산호도 아름답지만
빛이 닿지 않는 구간에도 세계는 있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색으로.
손전등 없이 그 동굴을 지나쳤다면
내벽에 가득 붙어 있는 스펀지들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어두운 구간으로 기억됐을 것이다.
어떤 도구가 있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떤 각도에서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떤 수심까지 내려가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다이빙이 계속 새로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음번에는 또 다른 어둠 속을 들여다볼 것이다.